나의 가족이거나 나의 친구이거나
어쩌면 나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진짜 아버지들의 얼굴
"별 탈 없이 다 결혼해서 잘 살고 있으니까 난 더 이상 바랄 게 없어."
"미안한 만큼 아이에게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살게 해주고 싶어요.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이유에요."
"젊은 아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냐고요? 힘든 일이 많겠지만 지나가기를 기다리라고 말하고 싶어요. 언젠가 다 지나가니 기다리라고."
"이발은 내가 선택해서 배운 거니까 좋고 재밌어. 51년을 해도 좋아. 특별한 이유가 뭐가 있어. 내가 선택해서 배웠으니까 좋은 거지."
"저는 부모가 활시위만 당겨주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잘할 수 있게 당겨만 주는 거요. 과녁은 애들이 맞춰야겠죠.
과녁까지 엄마, 아빠한테 맞추라고 하는 건 원하지 않아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뒷받침해주는 게 부모 역할이 아닐까요?"
"저의 가장 좋은 친구는 아내죠, 아이들이 아니고."
"마음에 애정은 많은데 제대로 표현 못 한 무정한 아빠. 사랑한다고 말하는 데 장애가 있는 아빠. 이게 아빠로서의 제 모습이고, 후회하고 반성하는 점입니다."
"그 당시 아이들이 가족 그림을 그리면 저는 제일 뒤쪽에 알파벳 ZZZ 로 표현하곤 했습니다. 형태도 분명하지 않은 자는 아빠. 그때 비하면 지금은 대화도 자주 하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습니다. 과거 제 고민이 무색하게 아빠 직업을 적는 칸에 아이들이 당당하게 목수라고 적습니다.
그 앞에 수식어도 붙여줍니다. ‘천재’ 목수."
"제 바람은 그저 토요가 앞으로 15년은 더 살았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류간이가 성장하는 시간 동안 우리 가족이 더 오래 함께 사랑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아버지의 상황이, 그의 선택이 이제는 이해가 됩니다."
"앞으로 더 잘 되어야죠. 지금은 부모님 일터를 쪼개어 쓰고 있으니까 바로 옆에서 제가 하는 걸 지켜보고 계시잖아요. 잘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저는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데 그러려면 제가 아버지와 관계가 좋은 게 먼저라고 해요. 아버지랑 서운했던 걸 털어내야 한다고요. 그래서 올해엔 아버지와 단 둘이 여행을 가보려고 해요. 거기서부터 시작해보려고요."
"음, 그런데 본인이 진짜 하고 싶은 건 뭐예요?
그 질문을 받고 깨달았어요. 내가 하고 싶었던 것, 좋아하는 것을 오랫동안 묻어뒀구나. 퇴직 이후에도 여전히 ‘나’는 고려하지 않았구나.."
"아뇨, 저는 만두 만드는 게 싫어요. 성격에 안 맞아요. 몰입이 안 되거든요.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반까지 종일 가게 안에 있다보면 우울해요."
"인생에 있어서 한 번쯤 내가 원하는 대로 생각하는 방향대로 사는 것도 좋을 것 같단 생각이었어요. 그게 회사를 관둔 이유예요. 제 템포에 맞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아이에게서 저와 닮은 모습을 볼 때는 단순히 ‘좋다, 신기하다’를 넘어서는 감정이 느껴집니다. 저와 닮은 작은 아이를 통해서 제가 살아왔던 지난 시간들, 유년기의 기억들을 되짚어보게 돼요."
"미래에 대한 고민이라는 게 먹고 사는 게 해결이 돼야 다른 고민을 할 텐데 먹고 사는 고민이 해결이 안 되니까 다른 고민, 더 발전적인 고민은 하지도 못하는 거죠."
"유치원에 아이를 데리러 가면 아이가 한 번씩 실망할 때가 있어요. 다른 집은 엄마가 오니까 ‘또 아빠야…?’ 하고. 그럴 땐 섭섭하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도 들고 그렇죠."
"내 안에 기준이 없었던 거예요. 그냥 화보나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행복한 가정에 대한 단편적인 이미지밖에 몰랐던 거죠. 아프게 깨달았어요. 제가 그동안 좋은 아빠 이미지 놀이를 하고 있었다는 걸."
"아이에게 사랑을 충분히 주면 아이들은 부모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엇나가진 않는다고 생각해요. 잘못되진 않는다. 그걸 확신하고 있어요."
"딸한테 내가 내세울 수 있는 거는 꾸준하다는 거야. 하는 일도 봉사도 지치지 않고 꾸준하다는 거."
"그동안 열심히 살았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거 해야죠.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 네 인생이니까. 틀리더라도 망치더라도 괜찮으니까 네가 좋아하는 걸 선택해라.”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할 것 같아요.
무엇보다 제 가족이 걱정 없이 편하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는 아이에게 물질적 풍요로움을 주는 것보다 같이 보내는 절대적인 시간의 양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가족을 생각하면 힘들지만 안 힘들게 돼요. 내가 지켜야 하는 것들이 있으니까 그걸 지키려면 뭐라고 하게 되는 것, 그런 마음인 것 같아요."
"눈을 크게 뜨고 세상 돌아가는 걸 보라고. 넓게 보고 세상 물정을 배우라고."
"연세가 많아지면 갈 데가 없어. 좀 걸리적거리는 존재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지."
"내가 바지통은 기가 막히게 잘 줄여요. 아가씨도 바지 큰 거 줄이려면 나한테 가져오세요."
"딸의 삼춘기보다 걱정인 건 요즘 저 스스로 늙어간다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몸보다도 마음이요."
" 어머니가 그렇게 하셨거든요. 삶아둔 팥을 다음 날로 넘기는 모습을 한 번도 보여주신 적이 없어요. 매일 아침 김치를 새로 담그고, 시간에 맞춰 새로운 팥을 삶으셨어요.
어머니는 저에게 늘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먹지 못할 음식은 손님에게 내지 말아라.” 어머니가 제게 남겨주신 가장 소중한 유산은 바로 이 말입니다."
"지금 젊은 사람들 보면 안타까워. 저기 가로수길 보면 가게 하나에 권리금 2~3억 줘야 하잖아. 수리도 해야 하고 보증금도 내야 하고 그러니 사업하려면 4~5억씩 가져야 시작을 한다고. 근데 4~5억을 어떻게 벌어? 또 했다가 잘못되면 거지되는 거야. 가로수길도 사람 몰린 게 3~4년 됐어. 근데 저기 봐, 저게 딱 죽어버리잖아?"
"나 같은 사람 밑에서 자란 아이는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까? 질문하게 됐어요. 이 질문의 끝에 절 기다리고 있던 건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장차 무엇을 아이와 나눌 수 있는 사람인가?” 같은 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었어요."
"요즘 사람들 고생하기 싫어하지만, 아무 걱정이 없으면 인생이 뭐, 큰 재미 없어요. 걱정이 있어야 살아가는 의미도 있는 거지 맨날 평온하고 아무런 걱정이 없으면 인생이 뭐, 의미가 있겠어요? 무의미하겠지. 걱정이 있어야 진일보할 수 있고 생각이 좋아지고 그러는 거예요."
"흔히 전통시장이 발전하려면 마트화되어야 한다고 말해요. 저는 거기에 반대예요. 마트화라는 건 규격화거든요. 시장은 색깔이 다 달라야 해요. 시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손님과 상인이 대화하게 돼요. 손님이 요청하시면 반도 드리고, 반의반도 드려요. 가격을 깎아드리기도 하고요. 이웃이잖아요. 규격화 되지 않는 사람들이고 이웃들이니까. 전통시장의 가치를 좀 더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연애할 때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되게 멋있어지고 싶고, 잘하고 싶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지는 그 마음과 아이를 향한 마음이 똑같더라고요. 아이에게 잘 보이고 싶어요."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데이트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출산하는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깨달았습니다. 저는 받아보지 못했지만 해내야 하는 과업이 있다는 걸요."
"정년 퇴임을 하고 나면 연기를 배워보고 싶다고 말해뒀어요. 엑스트라도 좋으니까 제대로 해보고 싶어요."
"아빠가 꼭 권위적이어야 하나? 혼자 책임을 짊어진 가장이란 존재가 이 시대 가정에 꼭 필요한가?
저는 남녀가 서로를 책임져주려고 결혼한다고 믿어요. 누구 한 명이 앞서서 이끌기 위해서가 아닌 거예요. 저는 제 아내가 사회적으로도 가정 안에서도 권위를 인정받길 바라요.
제 권위가 내려가는 게 아니고, 아내 권위를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가정을 함께 일궈가고 있습니다."
"‘핵바쁨’, ‘핵맛있음’ 처럼 제게도 ‘핵’가족이 생긴 거잖아요. ‘진짜 우리’라는 것이 생긴 느낌이었어요. "
"쉽게 구할 수 있고 아무 때나 할 수 있으면 추억으로 남지 않아요. 편리함? 좋지. 그런데 진짜 내 기억에는 남질 않아."
"나이 마흔이 훌쩍 지나 아빠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출산과 양육이라는 과업이 부담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아이가 성장해 독립할 때 즈음이 되면 저는 60대가 넘는데 그때까지 안정적으로 교육시키고 서포트할 수 있는 능력이 될까 하는 현실적인 고민이 있었어요. 제가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아빠가 될 수 있을지 두렵기도 했고요."
"가족이 같이 사는 게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서로 다른데도 불구하고 한쪽이 억지로 희생하며 사는 게 행복한 걸까? 생각하는 거죠."
"아버지가 그 시간동안 일궈놓은 사업을 제가 망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여전히 있습니다. 벌써 가업을 이어받은 지 14년이 되었는데도요."
"지금도 어린이날 놀이동산에 가고 싶다고 조르던 우리 애들 어릴 때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아요. 하교하는 아이들 뒷모습을 볼 때도 그 목소리가 들리고요. 그렇게 가고 싶어 했는데, 아빠가 되어서 그것 하나 못 해줬으니…"
"저는 숨을 거두게 되는 인생 마지막 순간에 제 아내와 자녀들이 “우리 남편, 우리 아빠랑 사는 거 정말 행복했어. 우린 친구처럼 재미있게 지냈어”라고 말하는 걸 듣고 싶습니다. 그게 제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입니다."
"산을 오를 때마다 아이에게 말해줍니다. 이렇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게 인생이야. 앞으로 네가 커가면서 잘 나간다고 우쭐할 것도 없고, 못 나간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단다."
"그날, 저는 제가 저질렀던 오류와 직면했어요. 그건 사랑이라는 이름의 구속이었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이 시기에는 아이에게 최대한 집중하고 싶어요.
이 시기를 놓치면 아이와 지금 할 수 있는 교감은 다시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